top of page

Key

minjung

2021-,
​불의 습기

 

기민정은 화선지를 활용해 실험적인 설치 작업으로 소재의 평면성을 뒤엎고, 타자의 서사를 화면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다양한 매체에 깃든 타인의 경험을 접하고 습득한 본인만의 감정이나 생각을 해석했던 그는 소재가 지닌 물성의 본질을 그대로 이해할지 혹은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할지의 질문을 던지며 작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다. 이번 전시, <불의 습기>에서는 내면화된 자아와의 관계에 집중하며 순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역류만을 갈망하는 것은 아닌 삶의 양가적인 태도를 내재한 자아의 에너지를 표출한다.

불의 습기 , 송은아트스페이스, 2021, 서울.

기민정은 화선지를 활용해 실험적인 설치 작업으로 소재의 평면성을 뒤엎고, 타자의 서사를 화면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다양한 매체에 깃든 타인의 경험을 접하고 습득한 본인만의 감정이나 생각을 해석했던 그는 소재가 지닌 물성의 본질을 그대로 이해할지 혹은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할지의 질문을 던지며 작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다. 이번 전시, <불의 습기>에서는 내면화된 자아와의 관계에 집중하며 순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역류만을 갈망하는 것은 아닌 삶의 양가적인 태도를 내재한 자아의 에너지를 표출한다.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얇은 화선지 위로 붓을 얹으면 형형색색의 물기가 스며들고, 붓이 이끄는 순간적인 행위에서 탄생한 형상을 표면에 막 닿아 선명한 색감이 확연하고 생명력이 더해진 유기체의 형상을 띠며 오묘한 첫인상을 남긴다. 불특정한 형상 또는 불, 물, 안개나 연기와도 같은 순간적인 현상에 가까운 형형색색의 유기체가 젖은 채로 화선지에 존재하다 서서히 말라가는 과정은 어떤 시점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약한 화선지에 그린 드로잉을 큰 유리에 붙여 무력함과 투명성이 부각된 <습한 빛 속의 움직임>(2021)에서 자유분방한 붓질들은 억눌리지 않은 경쾌한 내면의 기운을 그대로 분출한다. 종이에 물감이 스며드는 순간의 강렬한 색감을 밀착시키기 위해 에폭시를 부어 마무리하면 흐르는 물을 거스르고 잘게 부서진 파도에 부딪혀 포말이 생겨나듯 잔잔한 일상에 대항하는 작가의 자아가 작업 속에 스며든다.


전시장에 설치된 신작 중 가로 25cm, 세로 17cm 남짓한 작은 크기의 <조각창>(2021) 6점은 무늬 유리 아래로 크기에 맞게 드로잉을 오려내여 붙인 시리즈 작업이다. 명확한 목적없이 흘러가는 대로 붓을 맡기는 동일한 작업 방식을 취하되 규모가 큰 작업은 겹겹이 칠해진 다양한 색의 선으로 내면을 이야기 한다면,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소형 작업 <Paper on Glass>시리즈는 색의 면들을 통해 일상의 조각을 다룬다. 드로잉은 평상시에 그려온 것들로 그의 기분과 감정 등 일상이 주제가 되어 다양하지만 막연히 화려하지만은 않은 색채로 나타난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어봤을 떄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수 없는 것과 같이, <Paper on Glass>는 다른 작업들보다 차분한 내면과 한층 더 습해진 기운을 담아낸다.


여름의 날씨를 언제나 덥고 습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온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중에 수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수분의 흐름이 표면위로 드러나면서 우리에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전혀 반대의 속성을 지닌 불과 물이지만 두 원소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호작용을 통해 공존하듯, 기민정의 작업이 내포하고 있는 기운은 타오르는 불 같기도 고요히 흐르는 물 같기도 하다. 그는 양가적인 모습을 지닌 자신의 하루를 단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 양가적 관계의 개념들은 서로의 가치를 전복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통해 이해관계를 쌓고 소통하기 때문에 양극의 감정, 상황, 생각,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며 인간 자아의 에너지를 만들고 현재의 삶까지 이루는 건 아닐지 생각한다.

​김민지(송은아트스페이스)

© 2021 by minjungKey

  • Instagram
bottom of page